花明麗月
[이츠리리] 연극 본문
“로미오, 당신은 왜 로미오인가요?”
소녀가 들고 있는 것은 연극의 대본이었다. 조금은 낡고 바랜, 사람의 손때가 탄 종이뭉치 제일 위에는 유려한 글씨로 제목이 적혀있었다. 로미오와 쥴리엣.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만큼 유명한, 정열적인 한여름 꿈의 사랑이야기. 서로 반대되는 입장의 소년과 소녀가 만나 한눈에 반해 정열적인 사랑을 하고, 사랑과 함께 잠이 든 슬픈 이야기. 여주인공의 대사를 담담히 읊으면서, 나의 백합은 예쁘게 미소지었다.
연극
“책을 빌리러 가면 말이지, 그 사이에 껴있지 뭐야.”
오랜만에 그립구나~해서, 가져와봤어. 그렇게 말하는 소녀를 바라보다 눈을 감는다. 따뜻한 햇살은 적당히 노곤노곤하고, 불어오는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며 기분이 좋은 온도를 유지한다. 그 상태에서 천천히 나지막이 소녀가 읊는 사랑의 대사는 너무나도 달콤하다.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나를 사랑한다 맹세해주세요.”
그렇게 하면 제가 캐퓰릿의 이름을 버리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성을 내던지겠다 이야기하는 대담한 소녀가 머릿속에 나타난다. 소녀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정의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이름’을 사랑을 위해 내던지라 그리 외친다. 장미가 장미임을 포기하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운다 해서 그 아름다운 붉은 꽃잎과 달콤한 향기가 변하지는 않듯이,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된다고 하여 자신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리 말하는 소녀는 당당하고, 늠름하고, 고아하며, 사랑스럽다. 당장이라도 수풀 속에서 뛰쳐나와 끌어안아버릴만큼.
감았던 눈을 뜨면 눈 앞에 새하얀 백합의 소녀가 보인다. 잔잔한 미소를 띄고 즐거운 듯 연극의 대본을 따라 읽는, 나의 뮤즈가 보인다. 작은 입에서 정열적인 사랑의 말을 전하는 나의 작은 소녀. 나의 사랑. 나의 백합. 나의 리리.
그렇지만 그 사랑의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 너무나도 가슴이 아파서.
“쥴리엣, 나는 나의 이름을 버릴 수가 없어요.”
문득 깨닫고 보면 나온 대사에 리리가 대본을 읽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든다. 동그랗게 뜬 눈동자 속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것을 보고 가슴 한켠이 풀리는 것을 느낀다. 아무래도 나는 나의 백합이 나를 바라보지 않고 대본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꽤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존재하지도 않을 허구의 인물에게 질투를 할 정도로, 말이야.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백합의 앞에 서면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어 묻는다. 어째서인가요, 나의 로미오? 조금 난감하고 곤란한 표정은 소녀가 당황해하고 있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것이 어쩔 수 없이 사랑스러워서, 나는 무릎을 꿇고 소녀의 손을 잡았다.
“왜냐하면, 나는 로미오가 아니기 때문이예요, 나의 리리.”
나는 로미오가 아니야. 그리고 당신도 쥴리엣이 아니지. 나는 시미노라 이츠키. 너는 시라하나 리리. 우리들은, 이름을 버리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그런 비극의 인연이 아닌걸. 운명적이고 정열적인 사랑이라는 점에서는 같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을 맺는 그런 비극적이고 슬픈 이야기로 만들 생각이 없는걸, 나는.
“시미노라 이츠키는, 리리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너무나도 좋아서, 이름을 버릴 수가 없어요.”
마찬가지로 리리의 이름을 부르는 것 또한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리리가 이름을 버리게 놔두지도 않을거고요.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라간 소녀의 손을 가볍게 이끌어 손등에 입을 맞춘다. 그 시절의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을 때처럼.
“이름을 버리는 대신, 나의 모든 것을 당신에게 바치겠어요.”
그러니 나를 연인으로 불러주세요. 그렇다고 내가 시미노라 이츠키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나는 오늘부터 당신만의 시미노라 이츠키가 될 테니까요.”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이루 형용할 수 없기에, 나는 당신의 이름을 포함해서 전부를 가지고 싶어요.
그러니 내사랑, 나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당신의 전부도 나에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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