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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明麗月

[이츠리리] 백합 본문

Novel

[이츠리리] 백합

YeoWol 2016. 2. 24. 18:42

 

  그것은 지극히 변덕이었다. 느긋하게 새로운 화장품을 보러 나갔던 찰나 발견했던 팜플렛. 피아노 콩쿨. 보통이라면 자신과 연관이 없었기에 흘려버리고 외면했을터인데. 그날따라 어쩐지 흥미가 끌렸다. 어차피 시간도 있고, 콩쿨회장도 가까이에 있겠다. 시간도 떼울겸, 한번 가볼까나. 그런 사소한 감각으로 가볍게 찾아간 콩쿨회장.

 

  그런 중학교 1학년, 여름.

 

  나는 그곳에서 한송이 백합과 만났다.

 

 

 

 

백합

시미노라 이츠키 x 시라하나 리리

 

 

 

 

  삐삐, 삐삐. 조용한 적막을 깨고 울리는 자명종을 더듬어 끈다.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키면 옆에서 작은 뒤척임이 느껴진다. 시선을 약간만 돌리면, 곤히 잠들어 있는 자신의 백합이 보인다. 칠칠치 못한 채 풀어진 옷을 여며주고, 흘러내려온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주고. 가볍게 주름진 미간을 살살 문질러 펴준 뒤, 흘러내린 이불을 다시 덮어준다. 천천히 이불 위를 느린 박자로 토닥이면 약간의 잠투정을 부린 소녀가 풀어진 얼굴로 다시 고요한 숨소리를 낸다. 그런 사랑스러운 백합을 보면서, 미소지었다.

 

  나는 백합과의 첫만남을 기억하고 있다. 나의 백합이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나만의 소중한 추억을. 백합이 무대 위에 올라서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아 건반에 손가락을 올리는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아이가 연주를 시작한 순간 시간이 멈추고, 그 아이가 인사를 하기 위해서 일어난 순간 시간이 다시 움직이던 것을 기억한다.

 

  알 수 없는 사랑스러움과, 알 수 없는 감정. 조금은 지친듯, 슬픈듯, 그렇지만 즐겁고 행복하고, 사랑과 애정이 담긴 눈으로 트로피를 받아들던 소녀. 그런 너에게 난 한눈에 반했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이라면 알 수 있다. 소녀를 놓치면 안된다는 결심이 들었을 때. 무모하게 소녀를 뒤쫓았던 그때. 고개를 숙였다 드는 너의 눈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분명, 너에게 매료되었다고.

 

 

「릴리니까, 유리라고 불러도 될까?.」

 

 

  너는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백합을 닮은 소녀였으니까. 단순히 그 당시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일어선 모습은 작약, 앉은 모습은 모란, 걷는 모습은 백합. 그런 말이 있을 정도로,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백합. 당시 남들의 시선과 잣대 속에서 너의 미래를 결정하고 나아가던 너는 백합이었다.

 

  가녀리고, 청초하고, 무구한. 그렇지만 꺾이지 않는 심지 곧은, 한송이의 백합꽃이었다.

 

 

「백년, 기다려주세요.」

 

 

  나는 너를 볼 때마다, 백년 기다려 달라던 여성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커다란 진주조개로 구멍을 파서, 하늘에서 떨어진 별의 비석을 세워 무덤을 만들고, 그곳에서 백년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던, 여자가. 담담히, 조용히.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하며 다시 만나러 오겠다 약속했던 여자가. 그리고 결국 백합이 되어 약속을 지킨, 여자가.

 

  네가 백년을 기다려주길 바라는건 어느쪽일까. 너의 그, 어리석을정도로 연약한 은발의 아담일까. 지금도 간혈적으로 진동하는 너의 휴대폰에 비추어진 낯익은 이름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본다. 상당히 초조했던걸까. 어차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자신의 '성별'을 알게 되자 눈에 띄게 불안해 하는 소년. 그렇지만 늘 그랬듯 자신이 다가가진 못한 채 '소꿉친구'라는 특별한 자리에 만족하고, '그녀의 제일가는 이해자'라고 믿어 자만하는, 귀엽고 한심하고 어리석은 그. 조금 초조한걸까. 나도 그녀의 '특별'이라는 것을 그 아이는 알고 있을까?

 

 

"...오늘은 안돼, 소꿉친구군. 유리는 내가 이미 독점해버렸는걸."

 

 

  그녀의 핸드폰을 들어 전원을 끄고 배터리를 분리한다. 조금은 초조해하려나. 당황하려나. 그렇지만 미야기와 도쿄는 좀 많이 멀지? 미안해. 안타깝지만, 오늘 유리는 나만의 백합이야. 오늘 하루종일 도쿄를 구경시켜주기로 약속했지만, 이렇게 느긋하게 있는 것도 조금은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씩 일어날 기미를 보이는 유리의 이마에 입술을 맞댄다. 잠시간 그러고 있으면 간지러운지 키득거리며 눈을 뜬다. 그러면 나는 그녀의 눈에 한번씩 입을 맞추며 그녀에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안─ 유리. 좋은 아침."

 

"안 잇쨩, 좋은 아침."

 

 

  벌써 점심이지만. 그렇게 고하면 에엣, 진짜? 아깝잖아! 하고 비명을 지른다. 황급히 일어나려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밀며 넘어트리면 풀썩하고 이불이 들썩인다. 그대로 그녀를 껴안고 데굴 몸을 굴리면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트린다. 거기에 맞추어 나도 웃는다. 귀여운 백합. 사랑스러운 백합. 나만의 유리.

 

 

"괜─찮─아─, 일요일도 있으니까."

 

"어라라, 그럼 하루 더 머물러버릴까─?"

 

"그래버릴까─?"

 

 

  나는 아마, 기꺼이 백년을 기다릴거야. 영원한 잠이 든 너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을 닦고, 껴안고 작별의 키스를 하겠지. 그리고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떨어져 가는 것을 세며, 너의 무덤가 옆에서 너를 기다릴게. 백년이고, 이백년이고, 그래도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을거야. 비록 그렇게 기다려서 너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아주 짧은 한순간이더라도, 나는 그 한순간을 위해 그 길고 긴 시간을 너를 기다리겠지.

 

 

「...백년은 벌써 와있었구나.(百年はもう来ていたんだな)」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너에게 사랑을 고백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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