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明麗月
[夢/더블로] 息も絶え絶えな恋心 본문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오로지 침묵이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조용한 적막. 그렇지만 어디나 아늑하고, 안심감이 있는 장소. 말 한마디 없는 공간인데, 하고 싶은 말들과 할 말들이 투명한 형태를 이루고 공간을 가득하게 채운 그런 압박감이 희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은 때때로 요람을 떠올리게 하곤 했다. 양수로 가득 찬 요람 속을 기억한다면 마치 이런 느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息も絶え絶えな恋心
읽고 있던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긴 것을 확인하고 표지를 덮었다. 복잡한 타국의 언어로 이루어진 고급스러운 표지를 한 번 쓸어보면 거칠하면서도 부드러운 가죽 특유의 감촉이 느껴졌다. 고개를 살짝만 돌려서 남은 손을 바라보면 그 손을 붙잡고 조용히 잠들어 있는 그녀가 보였다.
“우응...”
흘러내리며 얼굴을 덮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면 스친 손길에 그녀가 살풋 인상을 찡그리며 투정을 부렸다. 꾸물거리며 위치를 몇 번 바꾸던 그녀는 이내 그의 허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불을 다시 다듬어주고 천천히 낮은 속도로 토닥이면 이내 안정을 느낀 듯 조용히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잡은 손은 여전히 꼭 쥐어진 채였다.
+
그녀와는 오래 알고 지내 온 사이였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오래.
그녀와 나 사이를 무어라고 정의하면 좋을까. 친구, 앙숙, 동료, 라이벌... 그렇지만 사전에 적혀있는 수많은 단어를 꺼내어 보아도 두 명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의할 단어를 그는 찾아내지 못했다. 이 단어를 들어보면 이런 면이 다르고, 저 단어를 들어보면 저런 면이 달랐다. 그렇다고 여러 개의 단어를 교합하자니 어딘가가 달랐다. 과학이나 의학. 논리적이고 명확한 것을 선호하며, 세상에는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 따위 없다고 장담하지 않았냐고 친우에게 놀림을 받아 그의 쓰디쓴 과거를 폭로해 버린 적도 있었지만, 그런 과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와의 관계 란에는 여전히 아무 단어도 쓰이지 않은 채였다.
너를 정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의 머리를 천천히 쓸어내리며 그는 생각했다. 손에 닿을 듯, 잡힐 듯하면서도 정신을 차려보면 늘 멀찍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그녀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는 순진무구한 모습과,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철한 모습과,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즐겁게 소리 내어 웃는 밝은 모습과, 아끼던 소중한 이의 죽음에 조용히 입을 틀어막고 오열하던 깨어질 듯 한 모습과, 소중한 동료를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던 자애로운 모습과, 언제나 진지한 말을 농속에 섞어가며 진심을 숨기던 외로운 모습과, 금세 얼굴을 붉히고 수줍어하던 사랑스런 모습과, 남의 프라이빗은 무시하고 성큼 들어오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벽을 치고 경계하는 모습과... 공존하기 힘든 여러 가지 모습이 공존하며 그녀를 구성하고 있었다.
머리를 만지던 손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살짝 발개진 눈가를 지나고, 혈색 좋은 부드러운 뺨을 지나고,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얇고 가는 목을 지나고, 가슴께에 손이 닿는다. 손바닥 너머로 느껴지는 온기와 심장박동소리. 그것은 네가 살아서, 이곳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직접적인 증거.
금방이라도 떠나버릴 것 같은 그 외로운 모습에, 늘 손목을 잡고 그녀를 이끌고, 살을 맞대고 껴안으며 그녀의 온기와 소리를 확인하는 것은 그의 버릇이었다. 그녀에게 눈치 채이지 못한, 자신의 불안함이었다. 집착이었다.
“차라리 너를 수술대에 눕혀 해부해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것은 너의 심장. 이것은 너의 췌장. 이것은 너의 피... 그렇게 하나하나 해부해서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고, 정의를 내려서, 그래서 너를 구성하는 전부를 알게 되면. 그 때야 비로소 너를 정의할 수 있게 될 까. 너와의 관계에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너를 알 게 될 수 있을까.
+
“로우는 늑대구나. 고독한 설원의 왕자.”
그렇게 말하며 웃던 그녀가 떠올랐다. 언제였더라. 아직 우리가 이렇게 커지기 전. 앞을 생각해서 산 학교의 제복이 커서 소매가 그녀의 손을 반쯤 가리고 있었을 때 이었던가. 나보다 먼저 커져서 나를 내려다보던 그녀의 키가 나와 비슷해지고, 결국에는 나보다 작아졌을 시절이었던 것 같다. 문득 책을 읽다 말고 나를 올려다보며 했던 그녀의 말은 너무나도 생뚱맞은 것이었다. 무슨 소리냐며 내려다보는 나에게 그녀가 건네주었던 책의 페이지에는 한 마리 늑대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한 번 목표를 정하면 그것을 향해 올곧게 망설이지 않고 나아가고, 물어뜯고, 그 어떤 역경과 고난조차 물리쳐 보이는 무리의 왕. 품 안의 동료를 소중히 여기고 그들의 모든 것을 생각하는 사려 깊고 자상한 리더. 한 편으로는 단 하나의 반려를 깊게 사랑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랑스러운 로맨티스트.
“아, 마지막은 아닌가. 로우 바람둥이인걸.”
“미리 말하지만, 나는 여자의 고백을 단 한 번도 받아들인 적이 없어.”
“맞아, 다들 멋대로 기대해버리는 거였지.”
친구라도 좋다고 말하고서는, 점점 욕심을 부리게 되고, 그 이상의 것을 원하게 되는 거야. 작게 내뱉는 그녀의 말은 차가우면서도 한켠의 연민을 안고 있었다. 나는 다를 거야. 나라면 그를 바꿀 수 있어. 내가 여기까지 하는데 움직이지 않을 리가 없어. 그런 기대를 멋대로 품고, 멋대로 이상을 강요하고, 멋대로 실망하고, 멋대로 화를 낼 뿐.
옆에 기대어 앉아있던 그녀가 책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영차, 하고 입으로 이야기하며 무릎 위에 앉은 그녀를 떨어지지 않도록 허리를 잡아 받치면 이런 부분은 신사적이라니깐,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마주 본 채 생글생글 웃다가 이내 뺨은 두 손으로 감싸고 살며시 눈을 감는다. 천천히 거리가 줄어들고, 기다면 긴 시간 뒤 다시 천천히 거리를 띄운 그녀가 눈을 뜨고 생긋 웃는다.
“로우의 자칭 여자 친구는 로우가 이러는 거, 알고 있을까?”
“모르겠지.”
그러면 로우는 나쁜 늑대구나.
그렇게 이야기하며 웃는 얼굴은 지금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비뚤어져 있었다.
+
단언컨대 입맞춤은커녕 여자에게 손을 대는 것은 너 말고는 없어.
그런 말은 다시금 겹쳐진 입술로 나오지 못한 채 스러졌다.
+
“로우...”
기어코 잠이 깨버린 그녀가 눈가를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졸음을 이기지 못 한 듯 꾸벅 꾸벅 조는 모습에 숨기지 못하고 실소를 흘린다. 나에게는 툭하면 늑대니 어쩌니 하며 말해놓고, 정작 자신은 늑대 앞에 잘 차려진 새끼 양 마냥 무방비한 상태로 있는 건 도대체 무슨 배짱일까. 뺨에 손을 가져다대면 온기가 기분이 좋은 것인지 드물게 뺨에 얼굴을 부비며 응석을 부린다.
“로보에게는 비앙카가 있었지.”
너는 나의 비앙카가 되어주지 않는 걸까. 하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모든 것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질투하고, 나의 모든 것을 바칠 너의 로보가 될 기회를, 너는 나에게 주지 않을까.
의미를 모르고 머리 위에 물음표를 달고 있는 그녀의 뺨은 감싸고 살짝 고개를 들게 해 발갛게 젖은 눈매에 입을 맞춘다. 간지러운 듯 어깨를 움츠리는 너의 뒷목을 붙잡고 그대로 목에 입을 붙인다. 가감하지 않고 힘주어 빨고 떨어지면 새하얀 목에 붉은 상처가 남는다. 아프니 어쩌니 하는 투정은 못 들은 체 하며 가슴에 얼굴을 묻고 조금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는다.
너와 나의 관계는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
누군가, 순서를 잊은 우리에게 올바른 정의를 가르쳐주지 않을까.
원피스 / 더블로 / 트라팔가 로우 x 마르세유 로제 / 息も絶え絶えな恋心
: 아이고 늦었다... 분명히 우리도 알게 된지 오래 되었지. 이런 저런 일도 있었지. 길고 긴 악연이었지. 그렇지만 그래서 다행이었어. 아으로도 잘 부탁해 적인 느낌의 무언가를 쓰고 싶었는데...? 나온 결과물은 의미불명의 무언가입니다 나도 모르겠다 퇴폐 선호자는 이래서 안됩니다... (털퍼덕) 현대 AU입니다 3차 창작...? 2차 창작...? 가급적 원작의 세계관으로 연성해보고 싶었지만 제가 더블로 떡밥이 펑펑 터지는 드레스 로자까지 못 봤거든요... 원작의 로제와 로우와는 좀 캐해석이 다르고 "말도 안 돼! 두 명은 이럴리가 없어!" 하는 부분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원래 연성이라는 것은 캐해석을 날조하는 것이라고 그랬습니다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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