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明麗月
[DOLCE/하이큐/엔노시타] 170회 : 난 또, 내가 네게 뭐라도 되는 줄 알았다 본문
숨을 내쉬었다.
새하얀 뭉게구름이 입을 빠져나가 금세 흩어져 사그라졌다.
[ 드림 평일 전력 ; DOLCE ]
불어오는 바람은 유독 차갑고 날카로웠다. 오늘은 한파가 본격적으로 몰아치면서, 가장 추운 날이 될 거라고 말하고 있던 뉴스를 떠올리며 두르고 나온 목도리에 얼굴을 숨기고 몸을 움츠렸다. 좀 더 따뜻하게 입고 나오는 편이 좋았을까. 그렇지만 따뜻함을 챙기자니 거울 앞의 자신이 너무 부해보여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티가 별로 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잘 사용하지 않는 왁스로 슬쩍 멋을 낸 머리를 망가트릴 수도 없었고, 두툼한 패딩이나 투박한 양말은 왠지 멋있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옷소매 끝자락에서 덧입은 옷이 슬쩍 보이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싫었다. 결국 따뜻함과 멋 내기 사이에서 이리저리 저울질을 하던 천칭은 어딘가에서 들었던 ‘패션을 위해서는 추위도 견디는 것’이라는 문구에 장렬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그 결과 이렇게 코트에 목도리만 두르고 나와 버렸지만.’
그래도 조금은 멋있다고 생각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추위를 감내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친절하고 상냥한 그 사람이니까, 어쩌면 붉어진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끼고 있던 장갑을 서둘러 벗고 뺨을 손으로 감싸며, 너무 차갑다며 걱정을 해 줄 지도. 조금이라도 닿을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오래 그 사람의 시선이 나를 향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추위를 견디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
“치카라는 변한 게 없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으니, 예전보다 멋있어졌네, 라던가 남자다워졌구나, 라던가 그런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녀에게 자신은 여전히 어릴 적 손을 잡고 공원에 놀러가던 어린 이웃 동생인 모양이었다.
대학도 취직도 미야기가 아닌 도쿄로 정해버린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은 몇 년 만이었다. 가끔 귀성을 하곤 했다고 했지만 늘 타이밍이 엇갈려서 만날 수 없었다. 결국 귀성 선물이나, 가끔 보내는 연하장, 어머니가 가져오는 소식 등에만 의존해서 겨우겨우 그녀의 소식을 접해오며 얼마나 안타까워했던지.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쓴웃음만 짓고 있었더니, 그녀가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눈앞에 놓인 케이크를 내 쪽으로 밀었다. 여기는 역시 치즈케이크가 최고지. 맛있으니까 먹어봐. 접시를 받아 새 포크-차마 그녀가 사용했던 것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로 케이크를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가 생각났다는 듯이 가방을 찾았다. 내 정신 좀 봐. 너 보러 온 이유를 까맣게 잊어버릴 뻔 했네.
“그래, 치카라는 우리 대학에 오고 싶다고 했었다며?”
“네. 지난 모의평가는 B 판정이어서 조금 걱정이긴 한데...”
“응, 그것도 엄마한테 들었어.”
그래서, 짜잔!
그녀가 꺼내든 것은 몇 권의 노트였다.
“이건 내가 수험 때 공부했었던 거야.”
요점 정리만 모아놓았던 거랑... 이건 논술 전형 준비했던 거고... 요거는 대학 면접 질문 모아놓았던 거. 그리고 이거는... 설명을 들으며 펼쳐본 공책은 단정한 글씨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조금 얇은 펜으로 동글동글 예쁘게 쓴 글씨. 몇 개의 형광펜과 알록달록한 색깔의 펜을 추가로 사용한 공책은 알록달록했다. 공책의 한 귀퉁이에 그려진 꽃이나 동물의 그림까지, 자신과는 다른 스타일의 필기는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왔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졸업한지 좀 되었긴 한데... 그래도 도움이 제법 될 거야.”
“아뇨, 충분해요! 고맙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외치자 그녀가 놀란 듯 눈을 깜빡인다. 순간적으로 나온 행동에 카페 안이 조용해진다. 시선이 나에게 몰리는 것을 느끼며 말없이 자리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 어쩌지. 그녀가 나를 위해 자신의 노트를 일부러 챙겨왔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 흥분해 버렸어...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나를 보며 그녀가 웃었다. 귀여운 치카라가 열심히 노력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지. 같은 학교에 같이 다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대학까지 치카라가 후배로 와준다니까 기쁜걸. 전혀 이상하게 보지 않은 것 같아 안도하며 고개를 든 순간, 입가를 가리고 웃는 그녀의 왼손 약지에 자리 잡은 실버 링이 눈에 들어왔다.
“누나, 그 반지...”
“아, 이거?”
반지를 가리키자 그녀가 살짝 눈을 창밖으로 굴린다. 할 말을 찾을 때 그녀가 하던 버릇.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옮기던 그녀가 이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평소 같으면 똑같이 수줍어했을 그런, 좋아하는 표정이지만, 이번만큼은 그 미소가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처럼 끔찍하게 느껴졌다. 지금 당장이라도 열리는 저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차라리 내가 질문하기 전으로, 반지를 발견하기 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좋은 사람이야.”
치카라한테도 조만간 소개시켜주고 싶어.
......그 이후의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
어떻게 남은 시간을 보냈는지, 그녀가 그 뒤에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어떻게든 겨우 넘기고서 다시 도쿄로 가기 위해 떠나는 그녀를 역까지 배웅하고, 그녀를 태운 전철이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어쩐지 제대로 땅을 밟고 있는 감각이 잘 없었다. 붕 뜬 기분.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이게 꿈이길 바라는 내 마음의 탓이겠지.
나는 조금,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주 오래 전부터 봐 왔던 사이니까. 졸업 때 인사를 하러 가기도 했었고, 종종 공부를 배우러 찾아가기도 했었으니까. 그녀의 곁에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특정한 남자는 없었으니까. 먼저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가자고 제안해주기도 하고, 거리에서 만나면 같이 돌아오기도 하곤 했으니까. 가끔 부활동을 하고 있을 때 간식을 가져다주거나, 경기에 응원을 하러 온 적도 있었으니까. 멀리 가버린 뒤에도 꾸준히 연락이 닿았으니까. 항상 어디에 다녀올 때에는 나에게 주는 선물이 들어있었고, 연하장은 가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닌 나 개인에게 보내는 연하장이 왔었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한, 나 이상으로 친한 남자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특별한 것이 아닐까. 지금은 동생으로밖에 보지 않지만, 언젠가는 남자로 봐 줄 날이 오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더 접점을 만들어가고, 내가 대학에 가서, 어른이 되어서, 그녀와 대등하게 설 수 있는 때가 오면. 그 때가 되면 그녀의 옆에서, 함께 손을 잡고 남은 앞을 같이 걸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바보 같은 꿈을 꿀 정도로는 들떠버렸다.
“...춥다.”
불어오는 바람은 유독 차갑고 날카로웠다. 오늘은 한파가 본격적으로 몰아치면서, 가장 추운 날이 될 거라고 말하고 있던 뉴스를 떠올리며 두르고 나온 목도리에 얼굴을 숨기고 몸을 움츠렸다. 부드러운 감촉이 얼굴에 닿으면서 라벤더 향이 났다. 그녀가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던 유연제의 향이었다.
겨울바람은 너무도 춥고 시렸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만큼.
“추워서 그래.”
훌쩍이는 붉은 코가 아픈 것도, 울어서 눈이 따끔거리는 것도, 가슴이 아릿하게 아파 오는 것도 전부, 전부 추운 바람 때문이야.
평일 드림 전력 ; DOLCE / 제 170회 주제 : 난 또, 내가 네게 뭐라도 되는 줄 알았다 / 하이큐!! 엔노시타 치카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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